평화와 통일, 민주는 하나다 - 평민연 30주년 기념식


2018.02.02.

평화민주통일연구회 30주년 기념식

 

이해찬 의원이 정치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평화민주당(이하 평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어 현 7선의 국회의원인데요. 당시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청년 이해찬이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1987년 6월 민주항쟁 직후의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낙선을 하고, 평화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탈당을 하며 당시 김대중 총재는 정치적인 갈림길에 놓였습니다. 김 총재는 재야민주 인사들을 찾아가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줄 것을 설득하는데요. 고심 끝에 문동환 박사님을 필두로 총 98명의 인사들이 1988년 2월 3일에 입당식을 갖고 평민당에 입당합니다. 그때 청년 이해찬도 실무자로 함께 입당하였고, 그렇게 정치인 이해찬이 탄생하게 됩니다. 재야 출신으로서 제도권 정치를 잘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건실하게 정치를 해오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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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입당파들은 평화민주통일연구회(이하 평민연)라는 모임을 창립했습니다. 평민연은 87년 6월항쟁으로 분출된 평화, 민주, 통일에 대한 민중의 요구를 정당 내에서 실현하기 위한 조직이었습니다. "정책정당, 국민정당 건설"이라는 본령 하에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당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평민연은 국회의장, 국무총리, 당대표, 원내대표, 장관, 다수의 국회의원을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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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실존하는 조직은 아니지만, 평화민주통일연구회가 30주년을 맞았습니다. 30년 전 88년 2월 3일 평민당에 집단 입당한 날을 기념하여 평민연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평민연 창립 30주년 기념식 및 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1부 심포지엄에서는 '한국 재야 민주세력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 발전'을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있었으며, 2부에서는 '평민연이 걸어온 길'을 주제로 기념식이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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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평민연을 함께 했던 많은 동지들이 자리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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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연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1부 심포지엄에서는 더희망포럼 정책본부장인 정기영 박사가 '한국 재야 민주세력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 발전'을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이한열기념사업회 김학민 이사장을 좌장으로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만흠 박사, 한겨레 박창식 사업국장이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고 우리 정치사에서 재야 민주 세력의 입당이 지닌 함의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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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연 창립회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2부 기념식은 우원식 원내대표와 추미애 당대표의 축사로 문을 열었습니다.  평민연의 창립회원이기도 한 우원식 대표는 30년 전의 일화들을 풀어놓으며 추억에 잠긴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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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축사

 

추미애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에 평민연의 정신이 남아있다고 강조하며, 함께 민주개혁세력의 정통성을 지키며 평화, 민주, 통일의 시대적 과제를 묵묵히 수행해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동환 박사님 영상 인사말씀

 

초대 평화민주통일연구회 이사장이셨던 문동환 박사님은 병중이시라 영상 인사말씀으로 축사를 대신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이렇게 많이 모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젊은 동지들이 김대중 대통령하고 하나 되어서 한국 정치를 재건해 보려고 하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저도 거기에 한몫 끼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본래 저는 민주화운동은 해도 정치활동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본래 성격상 정치를 할 타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주화운동 외치긴 했으나 정당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동지들이 끈질기게 찾아와서 입당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도 그것을 기대하고 계셨어요. 내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고민하기를 아마 모름지기 한 달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하루 새벽 잠자리에서 정신이 들자마자 환상이 보였어요. 박영숙 선생의 모습이 초상화처럼 나타났어요. 박영숙 선생은 안병무 박사 부인이죠. YWCA 운동을 하셨던 분이에요. 그분의 환상이 나타났다가 다시 김대중 대통령이 초상화처럼 나타났어요. 그러자 수천만 명이 아우성을 치는 모습이 보였어요. 이런 환상을 보고 내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사실 내 형, 아우도 정치 안 하겠다고 은퇴했던 마음이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면서 제 마음도 바꿀 수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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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환 박사님 영상을 촬영하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옆으로 가게 되었어요. 평민당이 창당이 된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우연한 내 결단이 평민당 창당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됐어요. 그 후에 김대중 대통령과 더불어 입당한 임채정, 이해찬 등이 돌아다니며 선거 운동을 했어요. 나는 그들을 이끌고 당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의 입후보를 지원하는 운동을 돌아가면서 했어요. 일생 동안 그렇게 연설을 많이 해보긴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우리 평민당 당원들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평민당이 야당 가운데선 제1야당이 됐어요. 

  

그다음부터 김대중 선생을 모시고 우리는 정치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망명해서 미국 왔을 때, 내가 옆에서 친히 도와주면서 친분을 쌓으면서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었어요. 그 사람 정치에 미친 사람이에요. 그것을 위해서 몸을 바치기로 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또 보았더니 말재주가 여간 좋은 게 아니에요. 결국 평민당이 야당 가운데 제1야당이 되어서 그다음 정치에 공헌한 바가 많죠. 생각해보면 김대중 대통령이 정계에 다시 들어오게 된 것도 우리 젊은 친구들이 들어왔기 때문이고,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게 된 것은 내가 열쇠를 쥐고 있었던 격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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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영 의원, 배기선 전 의원, 이해찬 의원, 서경원 전 의원

 

이제 한국 정치를 보면 남쪽이 민주화가 됐는데 이제 남북이 하나가 되어서 평화를 위한 민주국가가 되는 일이에요. 당시 내가 들어갈 때, 정의를 위한 정치인들은 있었으나 효과 있게 나서는 지도자와 그룹이 없어서 이룩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 민주당의 후손인 남쪽에 있는 민주당이 그 역할을 해야 될 때예요. 

  

바라건대 사심을 다 버리고 2차 대전 때, 버림을 받아서 남북이 갈라졌던, 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든지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해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2차 대전이 우리를 갈라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이것을 거부하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서 정의와 평화를 위한 평민당 국가를 이룩해야 돼요. 

  

사랑하는 동포, 동지 여러분.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이에요.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서 인류의 평화에 공헌하는 나라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제가 나이가 많아서 여러분과 같이 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 개인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서 뜻을 가진 동지가 일체, 일신이 되어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디 이 정신을 잊지 말고 되살려서 조국의 통일, 평화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공헌하는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문동환 박사님의 절절한 말씀에 많은 분들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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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정 전 국회의장

 

문동환 박사님을 뒤이어 임채정 전 국회의장과 이해찬 의원의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래는 이해찬 의원의 인사말씀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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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습니다. 평민연 출범한 지가 꼭 30년이 됐는데, 앞에서 여러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평민연을 만들 때의 상황을 제가 조금 더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87년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3등으로 낙선했습니다. 표 차이는 많지 않았지만 3등으로 낙선을 했지요. 그때는 평화민주당과 통일민주당이 나누어져 있을 때인데, 평화민주당은 호남 기반이 강하고, 통일민주당은 영남 쪽 기반이 강했습니다. 낙선을 하고 나니까 노태우 대통령도 경상북도, 김영삼 대통령도 부산, 이러니까 여야가 전부 다 영남 쪽 사람들이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었고요. 

또 하나는 3등으로 낙선을 하고 나니까 88년도 선거(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대비해서 그 당시 평민당 의원들이 탈당을 시작했습니다. 25명 정도밖에 남지 않는 상황까지 가자 김대중 대통령께서 수유리에 있는 안병무 박사님 집으로 재야 어른들을 소집했어요. 그 재야 어른들이 대체로 76년도에 명동구국선언을 냈던 분들입니다. 주로 그분들을 초청해서 저녁에 만찬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그때 저는 실무자로 참석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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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이렇게 의원들 다 떠나가서 나도 이제 정치를 하기 어렵게 됐는데, 걱정스러운 것은 평민당이 없어지면 여야를 전부 다 경상도 쪽에서 하게 되기 때문에 호남 사람들의 소외감이 더 깊어질 가능성이 높고, 잘못하면 그것이 과격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이런 걱정을 하시면서 “기존 정치권에서는 내가 충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재야에서라도 입당을 해서 도와줄 수 있으면 나도 정치를 더 해보겠다. 내가 뭐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도 호남을 더 이상 좌절시켜서는 안 된다” 이러면서 “입당을 할 건가, 말 건가. 가부를 빨리 결정을 해 달라. 그래야 나도 정치를 더 할 건가, 안 할 건가를 빨리 결정을 해야 되기 때문에.”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먼저 떠나셨어요. 

 

남은 분들이 안병무 박사를 중심으로 해서 논의를 오랫동안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밤 11시까지는 했던 것 같아요. 밤늦게까지 논의를 했는데 거기에 오셨던 분들이, “우리가 이렇게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박정희·전두환도 극복을 했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라고 해서 최종적인 결론이 “입당을 하자. 입당을 해서 평민당도 살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더 정치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자.” 이게 그날의 마지막 결론이었습니다.

 

안병무 박사가 주로 사회를 많이 보셨는데 안병무 박사의 결론이 “나는 건강이 나빠서 입당할 수가 없으니 박영숙 당신이 먼저 입당을 해라. 그래야 재야가 입당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니 먼저 입당을 해라.”그래서 박영숙 여사가 두 달인가 석 달 먼저 입당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논의를 해서 입당할 사람을 최대한 숫자를 늘리자고 해서 이래저래, 아까 문동환 박사님 말씀하신, ‘정치는 안 하겠다. 재야 운동은 해도 정치는 안 하겠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도 입당을 하기로 결정을 했으니 입당을 하십시다’해서 성래운 교수 등 전부 다 해서 98명이 입당을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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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국 평민연이 들어왔는데, 소선거구제로 바뀌어 버렸어요. 12대까지는 중선거구제였는데 노태우가 자신감이 있어서 소선거구제로 바꿔 버렸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선거구가 늘어나 버렸어요. 그래서 평민연으로 입당한 사람들이 거의 다 공천을 받아서 출마를 하게 됐습니다. 우리 서경원 의원님, 그때 공천에서 가장 어려웠던 분이 서경원 의원이었습니다. 저하고 여기 계신 이길재 선배님, 임채정 의장님이 공천심사위원으로 그때 들어갔었거든요. 공천심사위원을 5대 5로 구성을 했었어요. 그때 3선인 조 무슨 의원님 공천이 당연한 거였는데, 거기를 제치고 서경원 의원님을 공천했던 기억이 나고요. 또 출마 못했던 분들, 장영달 의원님은 복권이 안 돼 가지고 출마를 못하셨죠. 그때 (평민연 출신이) 15명이 당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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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당의 체질을 바꿔나갔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당직자들이 자기 책상이 없었습니다. 책상 하나에 의자만 네 개씩 있어 가지고, 책상 위에 걸터앉는 용이지, 그게 업무 보는 책상이 아니었거든요. 왜냐하면 독재하고 투쟁하는 데에만 당이 필요했지, 정책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당을 체질을 바꾸고 꾸준히 노력을 해서 그 후에 ‘아, 평민연처럼 해야 되겠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문동환 박사님이 광주 청문회 위원장을 맡으셨습니다. 저는 광주 청문회 위원으로 활동을 했고, 그게 텔레비전으로 국민들에게 많이 생중계가 됐습니다. 정상용 의원이 청문회 멤버였는데, 본인이 광주 항쟁의 전사였거든요. 그래서 안 된다고 해서 제척 당해서 다른 분으로 하고 그랬습니다. 저도 광주 청문회 하는데 협박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기성 정치인이라고 하면 그 협박에 굴할 수밖에 없는 약점들이 있고 그런데 재야 출신들이 도덕성이 있기 때문에 활동을 많이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평민연이 그 후에 정치권에 재야 출신들을 많이 충원하는, 그런 선도적인 역할을 했고, 당의 문화, 정치 문화를 바꿔 나가는 데도 여러 가지 역할을 많이 했다고 봅니다. 아까 임채정 의장님께서 여러 가지 함축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언젠가는 평민연의 역할에 관해서 다시 한 번 정리를 해서 자료로 남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남북 공존을 어떻게 해내느냐가 큰 과제입니다. 그리고 언론 환경도 바꿔야 되고, 특히 복지 체계를 만드는 것들이 큰 역할이 주어진 과제인데 그런 일들을 저는 평민연의 정신으로 잘 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늘 말씀하시는 게 “평화와 통일, 민주는 하나다.”였습니다. 그 말씀을 전 실감합니다. 대통령이 탄핵돼서 민주화가 되니까 남북관계가 열린 것이거든요. 이렇게 두 개는 항상 같이 다니는 쌍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여기 계신, 참 그리운 분들을 오늘 많이 만났어요. 아주 반가웠고 가슴이 울컥합니다. 이런 정신을 잘 살려가지고 문동환 박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북 관계가 더 활짝 열리는, 그런 역할들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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